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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Sep 2022 16:32:11 U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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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Yes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 안영배, 간사이, 오사카, 도요토미, 임진왜란, 천수각, 도쿠가와이에야쓰, 벚꽃, 황석산성, 칠천량, 명량, 코무덤, 수토, 이순신, 명량, 남원, 호남
이 책의 주제어
#한국사 #조선중기
누구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는 역사 『정유재란』. 정유재란의 역사 현장은 철저히 파괴되고 왜곡됐다. 왜군들이 주둔했던 왜성들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피땀 흘려 지은 성임에도 불구하고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치되거나 엉터리로 복원된 경우가 적지 않다.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수군 주둔지였던 순천의 장도 섬 역시 개발의 삽질로 무참히 파손돼버렸다.

더 이상 정유재란은 ‘잊혀진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과 조선 수군과 명 수군이 최초로 연합 해전을 펼친 노량해전이 모두 정유재란 때 벌어진 일이다. 정유재란은 또 동아시아 3국이 싸운 당시로는 드문 국제 대전이었다. 조-명 연합군과 왜군이 일진일퇴 혈투를 벌였다.

조선 민초와 병사들만 희생한 것이 아니다. 이국의 들판과 바다에서 명나라와 왜의 무명 병사들이 속절없이 스러져 갔다. 2018년 현재, 한반도는 여전히 분쟁의 중심점에 놓여 있다. [잊혀진 전쟁-정유재란]은 ‘비극의 역사’이자 ‘숨겨진 역사’로 남은 정유재란을 재조명하기 위해 만들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중일 3국의 문제를 풀어갈 교훈을 찾아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저자소개
저자 : 안영배
저자 안영배는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후 1989년 동아일보사 기자로 입사, 30년 가까이 [주간동아] [신동아] [동아일보] 등 동아일보사 사내 여러 매체에 근무하며 바르고 유익한 정보와 지식의 전달자로 일해왔으며, 한국의 풍수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을 만큼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심과 조예가 깊다.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 기사 역시 그러한 관심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기획 기사가 6개월에 걸쳐 장기 연재되기까지, 더욱 진보하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정유재란에 관한 취재와 집필에 쏟은 열정이 대단하다. 420년 동안 묻혀 있던 역사의 흔적을 좇아 한국과 일본의 당시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관련 고문헌을 샅샅이 뒤져가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진실을 밝혀냈다. 이미 연재를 통해 많은 독자의 성원을 받았기에 책으로서의 가치는 특별하다.
이 밖의 저서로 『충격대예언』(둥지, 1995), 논문으로 ‘고려?조선 전기 이기파 풍수 연구’가 있다. 닫기
사진 : 박영철
목차
머리글
잊혀지면 안 될 우리 역사,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미래를 준비하라

1장 고통의 시작
원숭이의 재주가 유럽 열강을 끌어들이다
간계에 당한 조선, 이순신을 버리다
전쟁 물줄기 바꾼 칠천량의 비극
조선의 마지막 육전(陸戰), 황석산성 전투

2장 시련
호남 남원성이 무너지다
빼앗긴 호남, 계획된 살육
히데요시, “조선인 코를 베어 와라”
조선인 노예 사냥

3장 항쟁
이순신 ‘조선 수토(搜討)의 길’을 가다 ①
이순신 ‘조선 수토(搜討)의 길’을 가다 ②
이순신, 명량대첩 승리 확신
조선수군 재건의 뱃길을 가다
다시 일어선 의병들

4장 암투
왜장이 호남의 왕 행세를 하다
울산성의 호랑이 사냥
숨겨진 전쟁 ‘절이도 해전’
다국적 특수군 해귀(海鬼)와 거인(巨人)
한ㆍ중ㆍ일 장군들의 동상이몽(同床異夢)

5장 성웅의 최후, 후폭풍
이순신, ‘원수’ 고니시를 응징하다
노량에 떨어진 대장별
한ㆍ중ㆍ일에 휘몰아친 전쟁 후폭풍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 연재를 마치며
추천사
김병연(전 노르웨이 대사)
정유재란 420주년을 맞아 정유재란의 역사를 과감하게 양지로 드러내준 점에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 현재 정유재란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전적지가 무관심과 무분별한 훼손 속에 방치돼 있다. 지금이라도 충무공 이순신의 전적지인 장도라도 바다의 섬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임진ㆍ정유 역사재단 추진위원회 위원장) 닫기
이대순(한일협력위원회 부회장)
임진ㆍ정유 7년 전쟁이 벌어지기 전 조선에는 위기의식이 별로 없었고, 국정을 이끄는 최고 통치자와 관료 집단의 리더십 또한 아주 취약했다. 관료들은 국가 전체의 이익이나 국민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 소속 당파의 이익과 파쟁에만 몰두했다. 400년도 넘은 현재 상황과 비슷하다. 정유재란 당시 국난을 극복한 동력이 정부보다 일반 백성들의 호국 혹은 국토 수호 정신과 열정적인 헌신에 있었다는 저자의 관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전 경원대·호남대 총장) 닫기
출판사 서평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전
가려진 시간 속으로

420년 만에 드러난 빛나는 현장의 재조명

우리는 왜 알려고 하지 않았나?
많은 것을 빼앗긴 일본의 조선 침략 전쟁
굴욕 속에 가려진 백성들의 국토 수호 정신과 열정적인 헌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으로 시작돼
이순신이라는 성웅의 희생으로 마무리된 ‘찬란한 역사’

1597년 정유년, 조선의 강토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점령’을 목적으로 조선의 남부 4개 도, 특히 호남을 우선 탈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조선 남부 지역에 사는 조선인의 씨를 말려버리고 대신 일본인을 이주시켜 살게 하겠다는 야욕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 때문에 죄 없는 조선인들이 무참히 살육되고 수많은 백성이 일본에 노예로 끌려갔다.
왜군의 칼에 잘린 조선인들의 코는 일본으로 건너가 ‘전리품’으로 전시됐다. 약탈과 강간, 노예 사냥 등 있을 수 없는 잔혹한 행위가 이 땅에서 벌어졌다. 2년 간 이어진 전쟁의 피해는 임진왜란 때보다 몇 곱절 컸다. 하지만 치욕의 역사여서일까. 그간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에 묻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QyGmno9R31o
Author
Content Type
Unspecified
video/mp4
Language
Open in LB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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